[평화 오디세이 2016] 연해주를 한국 내수시장으로…내달 박 대통령·푸틴 회담 계기 극동 경협 돌파구 마련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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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오디세이 2016’ 둘째 날인 9일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남쪽으로 200여㎞ 떨어진 자루비노항을 둘러보고 있다.
중국 동북 3성의 물류 거점인 훈춘(琿春)에서 가까워 동해로의 출구 확보를 위해 중국이 러시아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는 항구다.
“한국은 하이테크 기업이 많다. 그런데 이제는 하이 챈스(High Chance)를 잡아야 한다.”
광활한 연해주, 농산물 싸지만
치약·화장지 등 공산품은 비싸
한국 제조업엔 기회의 땅
북한에 우회적 접근도 가능
중국은 연해주 공정 밀어붙이는데
한국은 서방의 러시아 제재로 신중
내달 2~3일 동방경제포럼이 기회
실용적 접근으로 교두보 만들 때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은 재계의 꾀돌이다운 아이디어를 연신 내놓았다. 과잉공급 시대가 되면서 대다수 기업은 하이테크 산업만 보고 있다. 하지만 평화 오디세이 참가자들은 연해주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봤다. 불황이라고 하지만 연해주는 극심한 공급 부족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의 통찰대로 연해주에는 기회가 많다. 국가자본주의의 잔재가 여전히 남아 있는 러시아에는 지금도 만성적인 공산품 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광활한 땅에선 곡물이 많이 생산돼 농산품 가격은 비싸지 않다. 반면 치약·칫솔·화장지 같은 공산품은 상대적으로 가격이 비싸다. 국내 기업의 기회는 여기에 있다. 오디세이 참가자들이 구상한 연해주 제2 개성공단에 국내 제조업이 들어가면 러시아 극동 지역의 공급 부족을 해소하면서 한국이 러시아의 신동방정책에 빠르게 올라탈 수 있을 것이란 얘기다. 이런 구상은 김석동 지평인문사회연구소 대표의 한민족 DNA론으로 뒷받침됐다.
그는 “산업에 성공하려면 인력·기술·자본에 전략이 필요한데 여기에 한민족 DNA를 더하면 된다”며 “유라시아에선 용감하고 영리한 사람만 살아남았는데, 한민족은 끈질긴 승부사 기질과 강한 집단 의지로 글로벌 마인드를 지향해 왔다”고 말했다. 이런 한민족 DNA는 리더십이 있을 때 강하게 살아난다. 신동방정책 실현을 위한 러시아의 러브콜이 강렬하고 시장 확장 가능성도 있지만 현재 한·러 경제협력은 북한 핵 개발과 우크라이나 사태로 제재를 받고 있는 러시아의 상황 때문에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다.
오디세이 3일차 되는 날 참가자들은 블라디보스토크 극동연방대학 APEC(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 정상회의실에서 열린 1차 세미나에서 이 문제를 놓고 불꽃 튀는 토론을 벌였다. 한국이 러시아에 얼마든지 매력국가가 될 수 있는데도 진전이 없는 이유와 타개책이 초점이었다. 이태림 법무법인 세종 선임외국변호사는 “한국은 지금이야말로 극동으로 나와야 하는데 말뿐이고 실천이 따르지 않는다는 이미지가 강하다”고 말했다. 이런 주장은 러시아와 관계를 맺어 온 러시아스쿨(전문가)의 중론이었다.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한·러 경제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한국의 행동을 촉구했다.
성원용 인천대 동북아국제통상학부장은 “러시아 극동은 한반도와 국경이 맞닿은 접경 지역이지만 현재 실질협력은 한국보다 중국과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러 경협이 속도를 내지 못하는 사이 중국의 ‘연해주 공정’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블라디보스토크 공항 인근에 마카오 출신 중국 투자자들이 참여한 대규모 카지노 리조트가 건설 중이고, 중국이 동해로 진출할 수 있는 자루비노 항만 공동투자와 블라디보스토크~훈춘 고속철도 건설 프로젝트가 줄줄이 추진되고 있다. 러시아는 중국의 이런 공격적인 접근을 부담스러워한다. 하지만 “한국이 구체적인 움직임에 나서지 않으면 러시아로서도 한국을 매력적인 파트너로 보기는 어렵다”는 게 유진태 신정글로벌 대표이사의 충고다.
정부 참가자로 나온 임수석 외교부 유라시아국 심의관은 다른 각도에서 한·러 경협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는 “2013년 한·러 정상이 합의한 경협 과제 가운데 진행되는 것도 있고 안 되는 것도 있다”며 “북한과 러시아가 제재를 받으면서 주춤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 나진-하산 프로젝트에 참여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지만 북한이 핵실험을 거듭해 분위기가 깨지고,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를 합병한 러시아를 미국과 유럽연합(EU)이 제재하면서 대(對)러 투자에 제동이 걸렸다는 의미다.
갑론을박이 이어지자 김영희 중앙일보 대기자가 최태원 SK그룹 회장에게 “정부가 요청하면 수익이 나지 않아도 러시아에 투자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국내 기업의 투자 영토를 확대하고 북한에 다가갈 일석이조의 기회에 기업의 반응이 궁금했던 것이다. 이에 대해 최 회장은 “요즘 정부가 요청한다고 해서 (수익이 안 나는데도) 투자할 기업은 없다”고 밝혔다. 해외 정보와 자금력이 부족한 중소·중견기업은 여건이 더 나쁘다. 연해주에 기회가 있어도 전용공단 건설을 비롯한 정부 지원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다음달 2~3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리는 동방경제포럼은 그간 막혀 있는 양국 경협의 애로를 뚫을 수 있는 기회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박근혜 대통령을 주빈으로 초청해 정상회담을 하기로 했다. 한·러 양국은 이에 필요한 사전 조율을 위해 25일 서울에서 한·러 경제과학기술공동위원회(경제공동위)를 열었다.
경제공동위는 1997년 서울에서 처음 열린 뒤 양국을 오가며 1년에 한 번씩 열린다. 러시아는 그동안 모스크바에서 다섯 번 열고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한 번 열었다. 그랬던 러시아가 지난해 처음으로 한국 대표단을 블라디보스토크로 불러들였다. 블라디보스토크를 극동 지역에 위치한 러시아의 경제수도로 만들겠다는 푸틴의 구상이 공염불이 아님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이벤트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경제공동위의 핵심 협의 대상은 처음부터 극동 개발에 맞춰져 있었다.
그동안 양국은 나홋카 공단 건설, 이르쿠츠크 가스전 개발, 캄차카 유전 개발, 자루비노 항만 개발을 비롯해 투자·에너지·물류·산업·농수산·과학기술·지역협력·보건의료 등 전방위적인 분야에서 협력을 논의해 왔다. 역대 정부가 바뀔 때마다 협상에 나서 강경식·이규성·진념·전윤철·김진표·한덕수·권오규·윤증현·박재완·현오석·최경환에 이어 유일호 부총리에 이르기까지 극동 개발 문제에 관여하지 않은 경제 수장이 없었다. 하지만 어느 하나 제대로 된 적이 없다.
이창운 한국교통연구원장은 “지금까지 양국이 서로 탐색을 했다면 이제는 때가 무르익었다”고 말했다. 국내 기업의 강력한 제조업과 K팝·K뷰티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한류 바람은 러시아 극동지역에도 예외 없이 불고 있다. 이렇게 분위기가 무르익은 만큼 앞으로의 관건은 정부의 외교력이다.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제재에 보조를 맞추되 실용적인 접근은 계속 해나가면 된다. 유라시아 교두보를 만드는 것은 북한에 대한 우회적 접근은 물론이고 국내 기업의 중국 의존도 완화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해 온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러시아의 신동방정책과 많은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연해주에 교통과 물류, 에너지 교환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데 양국은 윈-윈을 기대할 수 있다.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은 “양국 간 호혜적 실질 협력은 미국과 중국 의존이 큰 한국에 새로운 우회로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극동지역 진출을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숙명적인 과제라고 봐야 한다는 얘기다.
[출처: 중앙일보] [단독] 연해주를 한국 내수시장으로…내달 박 대통령·푸틴 회담 계기 극동 경협 돌파구 마련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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