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비전포럼] 과거사 굴레 벗어나야 역사화해를 향해 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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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일본이 보복하더라도 견딜 만 하다”고 자신하고 있다. 그러나 코로나19 상황에 한·일 갈등까지 더해지면 후반기 심각한 경제 위기를 맞을 수 있다. 일본은 아직 ‘수도꼭지’를 전부 잠근 게 아니다. 한국 내 투자 회수, 재일 교포·기업에 대한 보복, 금융 제재 등이 이뤄질 수 있다.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절차는 판정까지 수년이 걸리고, 일본은 수출규제를 유지하려 할 것이기 때문에 한국도 실익이 없다.
일본 역시 “보복 조치를 제대로만 하면 한국 경제는 그로기 상태에 빠진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보복 조치가 있어도 단기적 영향을 줄 뿐, 장기적으로 한국 기업의 ‘탈일본화’를 가속화할 뿐이다. 한국은 전략물자의 수출통제 시스템을 철저하게 정비했다. 일본은 강제징용 이슈 때문이라고 시인하지 않는 한 수출규제를 지속할 명분이 없다.
상황 악화를 막기 위해 현금화에 대한 다섯 가지 해법이 있다. 우선 피해자 변호인단이 사법부와 조정을 통해 현금화 절차를 유예하는 사법적 방안이 있다. 문희상안 재발의 등 국회 입법 조치도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 일본 정부가 자국 기업들에 자율적으로 해결하라고 하는 방안도 있지만, 일본 측 법리상 가능성이 크지 않다. 국제법 절차에 따라 중재·국제사법재판소(ICJ)로 가는 방안은 영토·여타 과거사 문제까지 파문을 불러올 수 있다. 끝으로 한국 정부가 피해자들에게 대위 변제를 하고, 일본에 구상권을 청구하는 방안이다. 한국은 사법부 판단을 존중하면서도 도덕적 우위에서 일본에 책임 추궁을 계속할 수 있다.
어떤 방식이든 한ㆍ일은 세 가지 원칙을 지켜야 한다. 첫째, 어느 일방의 승리에 의한 해결이어선 안 된다. ‘공동 노력의 원칙’이다. 둘째, 갈등은 서로에게 손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상호 파괴는 양국 국민ㆍ기업에 피해를 주고 제3국에는 어부지리 이익을 준다. 셋째, 과거사 문제의 포로가 되는 딜레마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 한국의 반일 감정 조장도 문제지만, 일본도 과거사 부정을 통해 자긍심을 키우려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이달 초 법원이 강제징용 피고 기업에 대한 압류명령 공시송달을 결정하면서 강제징용 문제는 8월 4일부터 현금화 절차로 넘어가게 된다. 한·일 간 레드 라인으로 여겨졌던 현금화 조치 가시화로 양국 관계는 또 한 번 격랑을 예고하고 있다. 26일 ‘한일비전포럼’ 18회 모임에서는 현금화 절차가 가져올 외교·경제적 파장과 이에 대한 종합적인 해법이 제시됐다. 참석자들은 “국제무대에서 한국의 외교 제약은 물론 경제적으로도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데 공감했다. 발제를 맡은 박철희 서울대 국제학연구소장은 “실제 현금화까지는 자산 평가 등 절차가 남아있는 만큼 그 전에 한·일 정부가 대응조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신각수 한일비전포럼 위원장=일본의 대응조치에 한국도 대응조치를 취하면, 일종의 하향 소용돌이에 의해 양국 간 갈등이 고조될 것이다. 문제는 양쪽이 지는 ‘루즈·루즈’ 상황에서 한국이 비대칭적 손해를 입을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입을 피해를 객관적, 현실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유명환 전 외교부 장관=외교적으로 우리에게 큰 손해다. 북핵 문제, 미·중 갈등, 한·미 동맹 관계라는 세 가지 측면에서 일본의 역할은 필수적이라는 게 존 볼턴 전 백악관 안보보좌관의 회고록에서도 확인이 됐다. 그런 면에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를 건드린 건 패착 중의 패착이었다. 최악의 경우 미국이 주한미군을 일본에 재배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경험상 일본은 절대 노골적으로 보복하지 않는다.
▶위성락 전 주러시아 대사=미·중 대립 구도 속에서 봐야 한다. 동맹 관리에 부심하는 미국으로서는 현금화 문제로 한·일 관계가 악화하면 일본 쪽으로 기울 가능성이 더 크다. 올 하반기 시진핑(習近平) 주석 방한으로 한·중이 밀착하는 모습까지 더해지면 결코 한국에 유리하지 않다. 주요 7개국(G7)의 G11 확대 역시 기존 멤버인 일본과 척을 지면 도움이 될 게 없다. 일본과 갈등이 심화하면 한국 외교가 뻗어 나갈 여러 전선에 제약을 받게 된다.
▶이종윤 전 한일경제협회 부회장=한·일 경제는 상호 의존성이 높아 양쪽 모두 손해다. 일본의 보복이 본격화하면 한국의 정책 당국은 독일 등 제3국에서 대체 수입을 늘리면 된다고 하지만 기업들은 내상을 크게 입는다. 경제는 ‘비용-이익’을 따지는 문제인데 우리 기업들은 고비용으로 경쟁해야 한다. 미·중 통상 마찰에 대비해 역내 포괄적 경제 동반자 협정(RCEP) 등 안전판도 만들어놔야 하는데, 한·일 관계 경색으로 가동이 안 되고 있다.
일본은 한국 내 최대 외국인 투자자
▶서형원 청암대 총장=일본이 조치를 했을 때 우리가 절제해서 대응하는 것도 중요하다. 일본 정부의 보복은 일본 내에서도 지지를 받기 어렵고, 국제 여론도 불리하다. 아베 정부도 그 점을 고민할 것이다. 때문에 일본 정부가 ‘큰 칼’은 쓰지 않을 거라 본다. 문제는 우리가 세게 나가는 경우다. 악순환을 끊기 위해, 일본이 보복 조치를 하면 맞대응하기보다 이로 인해 생기는 우리 기업의 손해를 정부가 보조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서석숭 한일경제협회 부회장=한국이 보는 대표적인 비대칭적 손해가 투자 부문이다. 일본 기업인들의 마음은 아베 정권의 의지와도 관계가 없다. 일본 기업들은 불투명성이 증가하면 한국 법인을 폐쇄하거나 동남아로 이전할 것이다. 투자의 축소는 한국의 일자리 문제로 이어진다. 일본의 금융제재는 우리 기업의 해외 차입에도 영향을 준다. 한국에 진출한 일본 기업은 395개사에 달한다.
▶신각수=최근 일본 기업 관계자에 따르면 코로나19로 인적 교류가 끊겨 한국에 들어와 있는 일본의 장비들을 유지·보수하는 기술자들이 들어오지 못한다고 한다. 일본의 소재·부품·장비 규제 가운데 타격이 제일 큰 게 장비 부문이다. 우리 기업들이 중간재를 만들어 글로벌 공급망에서 살아남는데 지장이 생긴다.
8월 4일까지 반드시 정부 간 협상해야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8월 이후는 국내 사법 절차로 들어가기 때문에 양국 간 협상 가능성이 줄어든다. 그 전에 한일 간 고위급 회담으로 방안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 일본 정부가 너무 완강하다. 한국은 일본 기업들이 대법원 판결을 이행한다면, 기업에 실질적인 손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보전하는 방안까지 일본 측에 제안했다고 알고 있다.
▶이원덕 국민대 교수=법원에서 현금화가 진행 중인 원고들에 한정해 정부가 대위변제 하는 게 가장 현실적이다. 정부가 피해자들에게 먼저 배상을 해주고 일본 측에 구상권을 청구할 수 있다. 필요한 예산은 50억원 남짓인데, 외교부가 혼자 결정할 수는 없다. 입법 조치는 피해자의 범위를 어디까지 할 것이냐의 문제가 있다. 2007년 한국이 특별법 제정으로 사망자에 2000만원을 보상했다. 법률 간 충돌 문제가 있다.
▶정재정 서울시립대 명예교수=한·일은 ‘역사 화해’라는 최종 목표 설정을 할 필요가 있다. 목표가 있는 싸움과 싸움을 위한 싸움은 다르다. 정부가 바뀌어도 1965년 한·일 협정 체제가 갖는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양국이 노력한다는 큰 그림을 가져가야 한다. 최근 윤미향 사태를 보면 한국이 역사 문제에서 반드시 일본보다 우위에 있다고만 볼 수 없다. 이런 자성 속에 장기적인 플랜을 세워야 한다.
▶최상용 전 주일대사=한·일은 1998년 공동 선언(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 등으로 이 원칙에 이미 합의한 전례가 있다. DJ-오부치 선언은 일본의 여·야 정치인,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어서 아베 총리도 부인하지 못한다. 그러나 일본이 수출규제로 보복한 것은 잘못이다. 만약 현금화 보복 조치가 나오면 한국은 초당적으로 비판해야 한다.
▶홍석현 한반도평화만들기 이사장=결국 청와대와 총리 관저 차원의 결단이 필요하다. 1965년 한·일 협정과 2018년 대법원 판결과의 차이를 메워 나가는 것은 양국 지도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다만 냉정하게 현금화가 진행되면 우리 쪽 손해가 더 클 수 있다. 이는 국민 전체의 피해이고, 우리 정부에게도 유리하지 않다. 모두가 100% 만족하는 해법은 상대가 있는 게임에서 있을 수 없다. 가능한 이른 시일 안에 정치적·외교적 타결을 봐야 한다.
정리=이유정·백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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