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비전포럼 25] ‘윤석열·기시다 합의’ 기대, 한·일 정상화 돌파구 찾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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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는 한·일 관계의 잃어버린 10년을 어떻게 메워야 할까. 윤 당선인의 대일 정책 핵심 키워드는 ‘미래 지향성’이다. 윤 당선인은 지난 11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와 통화에서 “한·일 양국은 안보·경제 등 향후 힘을 모아야 할 과제가 많으니 협력하자”고 말했다. 지난 21일 열린 제25차 한·일 비전 포럼에선 ‘새 정부 출범과 한·일 관계 전망’을 주제로 각계 전문가들이 토론을 벌였다. 참석자들은 “관계 개선에 대한 양국 내 기대감과 정부의 결단을 바탕으로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 이상의 ‘윤석열·기시다 합의’를 만들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한·일 관계가 1965년 수교 이래 최악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정부에서 시작된 관계 악화 국면을 고착화하며 갈등을 확대했다. 코로나19로 인적 왕래가 끊겼고 일본 국민의 반한 여론도 상당하다. 일본 내에는 문재인 정부를 ‘친북 반일 정부’로 받아들이는 여론도 있다고 한다.
현 정부 전반기인 2017년 5월부터 약 2년 반 동안은 일본과 전방위적 갈등을 빚었다. 2018년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 이후 양국 관계는 급전직하했다. 2019년 일본의 수출 규제와 한국의 지소미아(GSOMIA,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종료 선언 등 갈등은 이어졌다. 일본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훼방을 놓는다는 인식 등 대북 정책을 둘러싼 양국 간 온도 차도 극명했다.
현 정부는 후반기(2020년~현재) 들어 양국 관계 개선을 시도했지만 냉각기를 벗어나지 못했다. 강제징용, 위안부 문제에 대해 모순된 발언이 쏟아졌고 정책적 혼란만 가중됐다. 일본도 ‘한국이 숙제를 해올 때까지 팔짱을 끼고 기다리겠다’는 강경한 태도다. 지난해 4월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결정, 지난달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추천 등 새로 떠오른 갈등 사안도 만만치 않다.
윤석열 정부는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의 업그레이드 버전을 구축하고 한·미·일 협력을 강화하겠다고 공약했다. 경제·국방 등 여러 측면에서 한국의 위상이 높아지며 한·일 관계는 과거의 수직적 관계에서 이제 수평 관계로 바뀌었다. 그러나 양국의 인식 수준은 이를 따라가지 못한다. 일본과 타협하면 ‘대일 굴욕’이라 비판하고, 협력하면 ‘토착 왜구’라고 지적한다.
강제징용 문제의 경우 시한폭탄과 같은 일본 기업 국내 자산의 현금화 조치를 일단 유보하고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대법원에서 승소한 사건으로 해결 범위를 한정할 경우 피해자 최소 34명에서 최대 200명에게 최소 50억에서 최대 300억원을 지급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인 해결 방법은 ▶대위변제 기금 조성, 입법을 통한 해결 ▶국제사법재판소(ICJ) 등 사법적 수단 활용 ▶‘YS 포뮬러’(김영삼 방식)로 불리는 식민지 대일 배상 포기 선언이 있다. 위안부 문제도 화해치유재단 잔금 54억원, 정부의 양성평등기금 104억원의 활용 방안과 관련 연구를 어떻게 진행할지가 과제다.”
‘잃어버린 10년’ 더는 끌 수 없어
‘김대중·오부치 합의’ 2.0 나와야
민관공동기구 등 다각 협력 필요
강제동원 문제, 대위변제 합의를
▶유명환 전 외교부 장관=문재인 정부는 후반기 들어 일본과 관계 개선을 시도했지만 지난해 7월 도쿄 여름올림픽 계기로 문 대통령의 방일이 무산되는 등 결국 진정성을 보이는 데 실패했다. 일본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하다. 강제징용 문제 관련 최선의 방안은 여야 합의를 바탕으로 한 기금 조성과 대위 변제다. 한·일 기업과 국민의 자발적인 기부 등으로 기금을 만드는 ‘문희상 안(案)’을 부활하는 것도 합리적이다. 다만 차기 정부의 여소야대 국면에서 여당의 협조를 끌어내는 게 과제다.
▶신현호 변호사=한·일 관계가 수평적으로 바뀌었지만 일본 법조계와 소통해보면 아직 한국의 달라진 위상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일본도 한국에 대한 인식을 재정립하고 관계 개선의 ‘숙제’를 해야 한다. 위안부·강제징용 등 과거사 문제는 법적 수단이 궁극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결국 인류 보편적인 인권 문제라는 점을 부각해 전략적으로 일본을 압박해야 한다.
관계 회복하면 한국 이익도 커져
▶이근관 서울대 교수=한국의 새 정부 출범 후 한·일 관계가 좋아질 것으로 전망하는 여론은 바꿔 말하면 ‘관계가 이미 너무 악화해 더는 나빠질 여지가 없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문희상 안은 2018년 대법원 판결을 그대로 두면서도 현실적 해결책을 강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새 정부는 과거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새 합의 도출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김윤 삼양홀딩스 회장=한·일 경제협회장을 맡으며 절실히 느낀 바는 양국 간 정치적 관계가 안정을 찾지 못하면 경제 교류도 타격을 받는다는 점이다. 특히 2019년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 이후 상당히 힘들었다. 한국 내 일본 기업 모임인 서울재팬클럽(SJC) 회원 수도 점점 줄고 있다. 한·일 경제 규모가 빠르게 격차를 좁혀가고 있지만 양국 간 기술 수준은 여전히 간극이 크다. 따라서 향후 양국 협력이 복원되면 한국이 얻을 점이 훨씬 클 것으로 전망한다.
▶김현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한국은 민관 공동기구를 활용해 피해자를 설득하는 일이 관건이고, 일본은 강경한 여론 지형을 극복하는 게 과제다. 모두 구조적 문제로 해결이 쉽지 않다. 한국 새 정부 출범 후 여소야대 국면에서 피해자 단체가 야당과 의견을 같이하며 정부·여당의 해결책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을 우려도 있다. 일본도 국민 약 절반이 양국 관계 개선 가능성을 회의적으로 전망하는데 그 배후에는 자민당의 아베파 등 우경화된 정치권이 있다.
▶박홍규 고려대 교수=강제징용 해법으로 대위변제나 YS 포뮬러를 따를 경우 피해자와 반대 여론을 설득하기 위한 논리를 제대로 마련해야 한다. 윤 당선인은 일본의 사죄와 미래 지향적 관계 개선을 골자로 하는 김대중·오부치 선언의 새 버전을 만들겠다고 했는데, 윤석열 정부는 보수 정부만의 철학을 담은 새로운 선언 혹은 협약을 강구하는 게 바람직하다.
여야 협력하며 단계적 접근
▶정재정 서울시립대 명예교수=결국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느냐다. 한·일 관계의 이정표와 같은 김대중·오부치 선언에서 우리는 더는 일본의 ‘통렬한 반성과 사죄’에만 집착해선 안 된다. 대신 당시 한·일이 국교 정상화 이후 국가 건설 과정을 서로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양국 교류협력이 상호 도움이 된다고 평가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강제징용 문제는 피해자와 충분한 소통으로 그들의 진의를 확인하고, 위안부 문제와 더불어 학계에서 관련 연구 및 교육에 대한 고민도 있어야 한다.
▶권태환 전 주일 무관=윤석열 정부는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단계적 접근을 해야 한다. 인수위 기간 중 일본에 특사를 파견해서 의견을 교환할 수 있다. 이어 오는 5월 윤 당선인 취임식, 같은 달 도쿄에서 열리는 쿼드 정상회의, 오는 7월 참의원 선거 후 추진이 가능할 한·일 정상회담 등 기회를 활용해야 한다. 비정상 상태인 지소미아도 정상으로 돌릴 필요가 있다.
▶홍석현 한반도평화만들기 이사장=일본에선 윤석열 정부의 출범을 한·일 관계 개선의 청신호로 본다. 새 정부가 지난 10년간 관계 악화 국면을 반전시키길 바라는 기대감이 있다. 그 절차는 향후 여야 공동 위원회든 민관 위원회든 여야 협력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 관계 개선을 위한 세부적인 해법은 이미 다 나와 있다. 결국 중요한 건 갈등을 정치적으로 풀어보려는 당선인 본인의 의지다. 일본 정부의 진정한 사과와 유감 표명에 더해 미래 지향적인 양국 간 프로젝트가 마련된다면 김대중·오부치 선언의 업그레이드 버전인 윤석열·기시다 합의를 기대해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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