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즈음의 한중, 어떻게 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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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즈음의 한중, 어떻게 설 것인가
한중비전포럼 편
늘품플러스
경쟁(competition)과 협력(cooperation)을 결합한 코피티션(coopetition) 전략이 뜬다. 시장의 파이를 키워 이익을 공유한다는, 주류 경영학에서 요즘 떠오르는 주제다. 해외시장에서 경쟁 관계인 한국과 중국 기업도 중국 내수시장에서는 손을 잡을 수 있다는 논리다.
유럽에서 두 번째로 큰 은행인 UBS는 지난 3월 중국 합작사 지분을 67%로 높였다. 홍콩상하이은행(HSBC)도 올 4월 지분을 90%로 늘였다. 성장하는 중국 금융 시장에서 코피티션 전략으로 파이부터 키우겠다는 ‘적과의 동침’ 경영이다.
스마트폰 시장도 마찬가지다. 한국 대형 IT 기업 역시 최종 제품은 경쟁하지만 부품 공급망은 협력 관계를 맺어 이익을 최대화한다. 샤오미폰의 카메라 모듈·메모리 등을 한국이 공급하는 식이다. 박한진 KOTRA 중국경제관측연구소 소장은 미래 30년 한중 경제 패러다임으로 코피티션을 제시한다. 미개척 시장이 여전한 중국에서는 제3국 기업과도 경쟁 아닌 협력을 우선하라고 조언한다. 중국 시장 척후로 30년을 활약한 박한진 소장은 중국을 상대할 때는 제로섬 아닌 포지티브 방식으로 게임을 주도하라고 권한다.
코로나19가 막 창궐하던 2020년 봄 한중 관계의 미래 좌표와 비전을 찾기 위해 한중비전포럼이 출범했다.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 배치로 바닥을 치던 양국 관계 해법을 민간에서 모으자는 취지로 각계 중국 전문가들이 모였다. 15차례 만났다. 코피티션 전략을 비롯한 포럼의 집단 지성이 새로 출간된 이 책 『서른 즈음의 한중, 어떻게 설 것인가』에 담겨 독자를 찾는다. 서른이 되면 스스로 발 딛고 서라던 공자의 삼십이립(三十而立)에 대한 한국의 대답이다.
홍석현 한반도평화만들기 이사장은 서문에서 “한중 수교가 탈냉전이라는 순풍을 타고 돛을 올렸다면, 30년이 지난 지금은 냉전의 부활을 걱정하게 됐다”며 “위기보다 기회를 모색할 때 한중 간 어려운 문제도 해법을 찾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상대에 동의를 강요하지 않으면서 조화를 추구하는’ 화이부동(和而不同)”과 “과거를 기억하고 참고하되 미래를 향해 그 길을 터주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자세”를 강조했다. 한중은 어떻게 설 것인가라는 화두의 답이다.
이 책에는 각계 한·중 관계 전문가들이 참여했다. 서진영 고려대 명예교수, 윤영관 전 외교부 장관, 위성락 한반도평화만들기 사무총장, 노재헌 동아시아문화센터 원장, 이하경 중앙일보 주필이 좌담회로 혜안을 보탰다. 포럼 위원장을 맡은 신정승 전 주중대사를 비롯해 이희옥 성균중국연구소장, 전재성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 박한진 소장, 조철 산업연구원 연구위원, 이욱연 서강대 중국문화학과 교수, 김현수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추장민 한국환경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김흥규 아주대 정외과 교수, 김진호 단국대 정외과 교수가 필자로 참여했다.
총론을 집필한 신정승 전 대사는 “미중 간의 전략적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며, 한국으로서는 앞으로 불가피하게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하는 사안들이 늘어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선택은 한국의 정체성과 국익에 바탕을 두되 사안별로 결정하며, 국내적으로 충분한 토론을 거쳐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일단 결정된 사안은 일관성을 갖고 의연하게 밀고 나갈 것”을 강조했다. 분열은 안 된다는 고언이다.
북핵, 경협, 미래산업, 국민감정, 해상 경계선, 환경협력, 대중외교까지 이 책의 각론에는 정책이 풍성하다. 북핵을 살핀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는 조급함을 버리라고 조언한다. 그는 “중국은 전술핵 등 비대칭 전력을 강화하려는 북한을 저지하기보다 북한과 전략적 협력관계의 범위 설정 및 활용을 놓고 고민할 것”이라 전망하고 “한국은 북핵 문제에서 중국에 과도한 기대를 접어야 한다”고 제언한다. 이어 “한반도 현안에서 중국과 협력이 가능한 부분과 가능하지 않은 부분을 냉정하게 가려내고 가능한 부분에서 성과를 이루기 위해 정책을 집중하라”고 주문했다. 다수의 한국 국민이 지지하는 가치·정체성·국익을 정의한 ‘원칙’을 바탕으로 한 중국 정책이 전제다.
이 책은 정반합의 결론을 도출했다. 서진영 고려대 명예교수는 “갈등은 가급적 문제 삼지 말고 서로 이익을 찾아 발전시켜 나가자는 구동존이(求同存異)가 수명을 다했다”며 “중국에게는 ‘잘만 구슬리면 미국 품에서 나와 중국 쪽으로 올 수도 있겠다’는 잘못된 기대를, 한국에게는 중국이 북한을 포기하고 한국에 올 수 있겠다는 기대를 갖게 했다”고 지적했다. 해법은 홍 이사장이 제시한 ‘화이부동’이다. 체제와 이념의 차이를 굳이 꺼내서 상대를 당황하게 만들 필요가 있냐고 과거 생각한 게 구동존이적 사고였다면, 그 차이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하는 게 화이부동이라는 것이 원로의 조언이다. 탈냉전 시대엔 체제와 이념이 달라도 공존과 공영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이 책이 풀어낸 수교 30년은 찰나(刹那)다. 위기를 헤쳐온 수 천 년 두 나라 선조의 지혜가 있어서다. 서른에 티격태격하면 어때, 한국 시청자도 즐겼던 2020년작 중국 드라마가 공자를 살짝 비틀었듯 “겨우 서른(三十而已·삼십이이)”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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