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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경 중앙일보 주필] 문재인은 김정은의 불안감 잠재울 수 있다

By 한반도평화만들기    - 18-05-21 13:12    4,979 vi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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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노태우·김일성 합의로
남 전문가가 북 개발 계획 마련
문 주도로 글로벌 경제 편입하고
북, 진정한 완전 비핵화 결심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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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경 주필

북핵 위기 해결을 위한 최선의 시나리오는 ‘북한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와 똑같은 수준의 북한 체제보장(CVIG)을 맞바꾸는 것이다. 하지만 ‘선(先) 핵 포기, 후(後) 보상’이라는 ‘리비아 모델’에 북한은 반발하고 있다. 북한은 한·미를 비난하면서 남북 고위급회담을 일방적으로 취소한 데 이어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행사에 남한 기자의 취재를 거부하고 있다. 

북한은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세기의 담판’을 앞두고 사후적 체제보장의 불확실성에 대한 근본적인 불안감을 이런 식으로 드러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럼프식 해법’을 꺼내들고 달래면서 협상 결렬 시 ‘북한 초토화’를 경고하고 있다. 트럼프는 북한의 강경 선회에 중국 배후설을 제기해 미·중 갈등 양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모든 불안요소가 한꺼번에 등장하고 있다. 

북한이 콜라 캔보다 조금 큰 고농축우라늄을 숨기겠다고 마음먹으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특급 사찰 요원들도 찾아낼 재간이 없다. 그렇다면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 비핵화 완료 즉시 북한을 글로벌 경제시스템에 편입시켜 대규모 공적개발원조를 제공해 핵무기를 사용할 필요성을 사라지게 해야 한다. 

26년 전 남북 비사(秘史) 한 토막을 소개한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 유장희 박사는 1992년 5월 극비리에 평양을 방문했다. 인프라·산업 실무 전문가 12명과 함께였다. 일본 니가타에서 유엔개발계획(UNDP) 관계자들과 합류해 북한의 조선민항 비행기를 타고 순안공항에 도착했다. 방북은 노태우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 두 사람 간 합의의 결과였다. 김일성은 “나진·선봉을 꼭 개발하려 하는데 개발계획을 잘 짜 달라. 돈 걱정은 하지 말라”고 노태우에게 얘기했다. UNDP로부터 개발계획의 타당성을 인정받아 세계은행(WB)과 아시아개발은행(ADB)의 개발자금을 받아내겠다는 복안이었다. 경험이 풍부한 한국의 도움이 절실했다. 1991년 유엔 동시 가입, 남북기본합의서를 김일성과 합작했던 노태우는 “좋은 아이디어”라며 쾌히 협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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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경칼럼

남한 전문가들은 나진·선봉을 살펴본 뒤 이틀에 걸쳐 초안을 만들어 북측에 전달했다. 경제관료인 김달현 부총리, 이성대 대외경제위원장 등 실세들이 카운터파트였다. 김달현은 두 달 뒤인 7월 남한에 와서 삼성전자와 대우자동차 공장을 방문했다. 김일성이 ‘천재’로 인정하면서 신임했던 김달현은 당시 중국식 개방·개혁 논의를 주도한 인물이다. 그는 “남측은 이렇게 발전했는데 우리는 허송세월했구먼. 군비로 예산이 너무 많이 들어가서 할 수 있는 돈이 있어야지…”라고 한탄했다. 

유 박사는 93년 청와대에 불려가 김영삼 대통령으로부터 남북기본합의서를 확장하기 위한 실행계획을 만들라는 지시를 받았다. 김영삼은 “김일성은 거물이라 우리가 완벽하게 준비하지 않으면 당한데이…”라고 했다. 이런 흐름 속에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94년 7월 25일로 잡힌 남북 정상회담은 불과 보름여 전인 7월 8일 김일성의 급서로 무산됐다. 김정은 위원장은 2015년 신년사에서 할아버지가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사망하기 직전에 남겼던 ‘생애의 마지막 친필’을 거론하면서 안타까워했다. 정부 고위 관계자에 따르면 김정은은 “할아버지, 아버지가 못한 것을 내가 하겠다”고 진정성을 보이고 있다. 핵무기를 갖고 있는 한 경제발전이 어렵다는 자각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92년 남북 비밀 프로젝트의 구조는 남이 북의 개발계획을 만들고 UNDP가 합격점을 주면 국제기구가 돈을 대는 것이었다. 지금도 유효한 방식이다.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세계은행·아시아개발은행·유럽부흥은행(EBRD)에서 북한이 개방·개혁을 한다면 노하우를 갖고 참여하겠다고 한다”며 “북한이 지원을 받으려면 먼저 국제통화기금(IMF)에 가입해야 한다”고 했다. 결국 개방경제의 경험이 풍부한 한국이 발벗고 나서서 돕지 않으면 북한이 30년간 1241조원이 들어가는 철도·도로·전력 등 인프라 개발 자금을 마련할 길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김정은도 큰 그림을 보면서 한국과 미국을 믿고 CVID를 수용하는 대승적 자세를 보여야 한다. 

평화협정과 북·미 수교만으로는 북한이 원하는 완전한 체제보장이 이뤄지지 않는다. 그래서 북한이 글로벌 경제시스템에 편입될 수 있어야 한다. 92년의 교훈에서 보았듯이 북한의 개방·개혁 과정에서 한국의 역할은 누구도 대체할 수 없다. 이게 문재인 정부 신경제 구상의 핵심이 돼야 한다. 국제 개발 기구는 미국이 좌지우지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내일 워싱턴 정상회담에서 트럼프를 설득해 미국을 움직이고,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이후 전 세계가 참여하는 북한 경제 재건 청사진을 마련하기 바란다. 

이하경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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