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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승 고려대 교수] 방위산업, ‘잔치’ 이후의 전략을 준비해야

By 한반도평화만들기    - 26-07-01 11:47    9 vi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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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파리 북부 빌팽트에서 열린 유로사토리(Eurosatory) 2026을 찾았다. 세계 2000여 개 방산기업과 각국 대표단이 모이는 이 전시회는 단순한 무기 박람회가 아니었다. 전시장은 전차와 자주포, 장갑차는 물론 드론·대드론 체계, 전자전 장비, 사이버 방어 솔루션으로 메워졌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의 재무장은 무기 증산의 문제를 넘어, 산업과 기술, 인프라와 동맹 정치가 통째로 재편되는 지각변동이다. 


한국 기업들의 존재감은 눈에 띄었다. K2 전차, K9 자주포와 더불어 차세대 방어체계, 무인화 기술, 전장관리체계까지 한국 방산의 스펙트럼이 한층 넓어졌다. 한국은 이제 전통 강호들을 긴장시키는 강력한 도전자가 되었다. 그러나 바로 이 성취 때문에 새로운 도전이 시작된다.

지난 몇 년간 한국 방산은 유럽의 방위 공백이 만든 특수를 누렸다. 전쟁은 갑자기 왔고, 유럽의 생산능력은 부족했으며, 한국은 ‘빨리, 많이’ 공급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첫 번째 라운드의 ‘잔치’는 끝나가고 있다. 시장이 사라진다는 뜻이 아니다. 공급자 우위의 쉬운 판이 지나가고 있다는 의미다. 앞으로 유럽은 훨씬 까다롭게 물을 것이다. 어디서 생산되는가, 누가 설계권한을 갖는가, 그리고 소프트웨어 업데이트와 정비는 누가 책임지는가.

한국 무기를 가장 절실히 찾는 곳은 러시아 위협 최전선의 폴란드, 루마니아, 발트 3국 등 동부전선 국가들이다. 이곳은 한국에게 ‘실증 역량’의 공간이다. 장비가 얼마나 빨리 전력화되는지, 혹한과 야전 환경에서 얼마나 안정적으로 운용되는지, 탄약과 정비 체계가 얼마나 지속 가능한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나 동부전선의 수요만으로 대유럽 방산 전략은 완성되지 않는다. 파리, 베를린, 브뤼셀(EU·나토)을 잇는 유럽의 핵심 정책공간에서 ‘전략적 인증’을 받아야 한다.

이 삼각지대는 표준과 담론, 산업정책과 안보 정체성을 결정하는 상부구조다. 한국이 유럽에서 장기적 파트너로 자리 잡으려면 동쪽에서는 “잘 작동한다”는 것을 입증하고, 서쪽에서는 “신뢰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받아야 한다. 라인메탈, KNDS 같은 유럽 전통 강호들은 한국의 약진을 마냥 반기지 않는다. 한국이 “더 싸고 빠르다”는 서사만 앞세우면 단기 영업에는 이로울지 몰라도 장기 전략에는 위험하다. 유럽을 대체하러 온 것이 아니라, 유럽의 방위력 회복을 함께 앞당기는 파트너라는 정교한 언어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한국 방산은 패러다임 전환을 서둘러야 한다. 첫째, 제품을 넘어 안보를 논하는 구조적 신뢰를 맺어야 한다. 방산은 비즈니스인 동시에 국가의 전략적 목표와 연계된다. 유럽은 한국이 우크라이나 침공과 북·러 군사협력 등 글로벌 안보 위기 속에서 어떤 좌표를 갖고 있는지 묻고 있다. 한-EU 안보방위 파트너십과 비밀정보보호협정 협정 논의는 한국 방산이 유럽 안보 생태계로 진입하는 주요한 관문이다.

둘째, 한국만의 복합 산업역량을 융합해야 한다. 방위 역량은 무기의 숫자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철도, 항만, 통신망 등 인프라가 없으면 실제 억지력은 작동하지 않는다. 방산과 중공업, 건설, 에너지를 함께 다룰 수 있는 한국 특유의 산업구조를 활용해 ‘방위-인프라 복합전략’을 구축해야 한다. 금융정책을 포함한 ‘팀 코리아’ 전략이 갖춰지면 향후 우크라이나 재건과 동유럽 인프라, 그리고 중동·중앙아 시장까지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셋째, 사이버 영역에서 핵심 기술을 쥐어야 한다. 차세대 방위체계의 핵심은 전자화와 네트워크화다. 현대 전장의 품질은 장갑과 사거리가 아니라 디지털 운용과 복원력에서 결정된다. 사이버 공격 대응과 복구 능력, 소프트웨어 안정성, 가짜뉴스와 조작된 여론에 흔들리지 않는 정보의 신뢰성은 무기 체계의 일부가 되었다. 사이버 역량은 디지털 강국 한국이 눈에 보이지 않게 입지를 굳힐 분야다. 방산외교는 사이버, 우주, AI, 반도체를 아우르는 ‘과학외교’와도 결합되어야 한다.

다가오는 2026 튀르키에 나토 정상회의를 앞두고 다자안보 전략도 돌아봐야 한다. 나토와 아태지역 4개국(한국·일본·호주·뉴질랜드)은 지난 수년간 최고위급 수준에서 안보 의제를 함께 조율해 왔다. 앞으로 이 협력체가 어떤 형식으로 이어질지는 열려 있지만, 이 플랫폼은 한국 외교·안보의 외연을 넓혀 왔으며, 향후 중국, 러시아와의 관계 설정에서도 중요한 레버리지가 된다. 외교적 자율성은 고립이 아니라 정교하게 설계된 연결망에서 나온다.

“무기상 코리아”의 이미지는 오래가지 못한다. 더 싸고 빨리 파는 국가를 넘어, 함께 만들고 오래 운용하며 위기 때 공동으로 대응하는 국가가 되어야 한다. 첫 라운드의 잔치가 끝난 지금, 한국 방위산업이 다음 단계의 문을 여는 것은 전략적 신뢰, 산업의 확장성, 과학기술, 그리고 조용하지만 치밀한 외교의 힘이다.

이재승 고려대 국제학부 교수·일민국제관계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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