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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병세의 한반도평화워치] 글로벌 중추국가 비전, 국가 전략으로 발전돼야

By 한반도평화만들기    - 22-06-07 11:27    3,220 vi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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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행정부 출범 직후 개최된 한·미 정상회담으로 동맹 관계가 회복됐다. 더 나아가 한국이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에 창설 멤버로 참여함으로써 새 정부의 글로벌 중추국가 비전 실현을 위한 첫 단추가 잘 끼워졌다. 냉전 종식 이래 최악의 대내외 여건 속에서 출발한 윤 행정부 입장에서 그 의미가 깊다.

먼저 한·미 동맹은 한반도와 동북아를 넘어 인도·태평양과 글로벌 차원으로 외연이 확대되고, 군사·경제를 넘어 첨단기술·가치 동맹으로 영역이 확장되었다. IPEF 참여로 출범 초기부터 참여국들과 공동 협력 방안을 모색할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했을 뿐 아니라, 시장 접근에서 공급망, 가치 중심적 경제 협력으로 진화하고 있는 국제 통상외교 환경에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게 되었다. 쿼드(Quad, 미·일·호주·인도 안보협의체)에 참여하지 못한 데서 오는 공백도 어느 정도 상쇄할 기회를 확보하게 되었다. 


IPEF는 인·태 지역과 글로벌 차원의 지정학적 지각 변동과 신냉전 시대에 맞춰 경제안보 질서를 재편하려는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제시한 인·태 전략 5대 목표(자유와 개방, 연계성, 경제 번영, 지역 안보 강화, 초국가적 위협에 대한 복원력 구축)도 대부분 역대 한국 정부의 정책 방향과 부합하는 것일 뿐 아니라 아·태 지역의 다양한 다자 통상, 경제 협력 체제에 참여해 온 우리의 입장과도 궤를 같이한다.

신질서 창출 과정에 후발 주자로 가담하거나 이행자로만 남을 경우 얼마나 큰 비용을 치러야 하는지 우리는 그간 유엔,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쿼드 가입 문제 등을 통해 깨달았다. IPEF는 현 단계에서 미흡한 점도 있고 진영 대결로 인식되는 데 따른 어려움도 있지만,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등과 마찬가지로 진화 과정에서 기존 협력체와 차별화되는 역할을 키워 나갈 것이다.

IPEF를 중국 견제라는 소극적 차원에서 이해하기보다는 국제 질서의 대변환과 세계화의 약화라는 큰 흐름 속에서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역내 국가 간 다자 또는 소다자 협력이 확산하는 추세를 직시해야 한다. 30여년 전에도 우리는 냉전 종식에 맞춰 호주와 함께 발 빠르게 APEC 창설을 주도해 새로운 아·태 질서 태동과 발전에 기여했다. 당시 아세안의 초기 반발을 지혜롭게 극복했다.

글로벌 중추국과 한·미 동맹은 보완적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글로벌’ 포괄적 전략동맹에 합의한 것은 한국이 세계 무대에서 더 큰 역할을 해 주기를 바라는 미국과 국제사회의 여망과 신정부의 외교 비전이 자연스럽게 합치된 결과이다. 지난 10일 윤 대통령의 취임사는 우리가 왜 국제사회에서 주도적 역할과 기여를 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역설한 점에서 역대 대통령 취임사와 대비되고, 남북 관계를 중심으로 세계를 바라본 지난 정부의 시각과 구별된다.

이러한 신정부의 비전이 세력 전이 시대에 동맹과 파트너의 역할 분담을 중시하는 미국의 글로벌 전략과 과거 어느 때보다도 공통분모가 많은 것은 당연하다. 2차 대전 종전 이후 이러한 글로벌 역할을 수행해온 나라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일본도 아시아를 넘어 글로벌 역할을 하기 시작한 지 오래되지 않았고 그 영역도 아직 제한적이다.

우리의 경우 객관적 국력 상승에도 의식 구조나 행태가 역사적 경험과 지정학적 제약으로 인해 글로벌 차원에서 중추적 역할을 할 필요성을 크게 인식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었다. 또 북핵 등 현실적 난제들이 수시로 우리의 행동 반경을 제약해 왔다. 따라서 이러한 비전을 실제 추진해 가는 과정에서 많은 난관이 예상된다.

그런데도 이러한 비전 제시의 의미가 큰 것은 냉전 종식에 맞춰 북방외교, 유엔 가입 등을 통해 30여년간 외교 지평을 능동적으로 확대해 온 연장 선상에서 새로운 도약을 모색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남북 관계 중심의 사고를 벗어나 세계 속의 한국이라는 큰 맥락에서 상호 추동적으로 접근하려는 전통을 계승 발전시키는 점도 긍정적이다.

글로벌 중추국 실현 위한 5대 과제

글로벌 중추국가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유념할 게 있다. 첫째, 한반도, 인·태 지역, 글로벌 차원에서 분출하는 시급한 위기와 도전으로 다시 남북 관계 중심, 당면한 현안 중심으로 회귀하려는 관성과 타성을 경계해야 한다. 한반도, 인·태 지역, 글로벌 관심사 간 균형을 늘 유지해 나가야 한다. 한반도와 동북아 중심 관성에서 벗어나기가 말처럼 쉽지는 않다

둘째, 군사안보적 측면에서 글로벌 또는 역내 기여가 필요할 경우 사전에 명확한 기준과 절차에 대한 검토가 이루어져야 한다. 한·미 동맹의 경우 상호방위조약상 태평양을 대상으로 함에도 오랫동안 한반도 중심으로 시행되었다. 역외 분쟁에 대한 기여(out of area contribution)를 해야 할 경우, 참여정부 시절 이라크 파병에서 보듯 그 민감성으로 인해 국론이 분열될 수 있다. 우크라이나 지원 방식,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 유지를 위한 협력 문제는 중요한 시금석이 될 것이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맹국과 일본도 과거 미국과 역외 역할 강화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다.

셋째, 민주주의와 인권 등 가치 연대에 참여하지 않는 비연대 권위주의 국가들의 다양한 반발과 저항에 충분히 대비해야 한다. 북한·중국·러시아뿐 아니라 그 이외 국가로도 전선이 확대될 수 있다. 특히 인권 침해 국가들이 우리와 다양한 이해관계를 형성하고 있을 경우, 모든 나라에 대해 일관된 입장을 유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고 대가도 감수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의 원칙과 대응 논리를 확고히 해야 한다. 천안문 사태 이후 10년간 유엔 인권위원회는 중국 인권 문제의 최대 격전장이었다. 최근 우크라이나 문제에 대한 유엔과 국제회의에서의 대립 모습과 유사했다.

넷째, 지정학·지경학적 갈등·분열의 시대에 다양한 양자·다자·소다자적 연대를 확대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지난주 다보스포럼에서도 강조됐듯 이제 지역 협력과 국제 연대는 필수 조건이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오랜 중립국인 핀란드·스웨덴이 나토 가입을 신청하고,공급망 교란과 세계화 퇴조로 경제와 안보가 동의어가 되는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다양한 중견국 연대는 물론이고, 한·미·일 3국 협력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또 중국이 우리와 함께 참여하는 다양한 지역·글로벌 협력 장치(G20APECASEAN+3, EASASEMRCEPAIIB, 한·중·일 3국 정상회의, FTA 등)도 갈등이 아닌 협력을 도모할 수 있는 교집합으로 활용해야 한다.

다섯째, 글로벌 역할에 장애 요인이 될 전략적·지정학적 도전에 집권 초기부터 면밀히 대비해 두어야 한다. 최소 100여 개 이상의 핵무기로 무장하게 될 북한, 더욱 막강해질 시진핑 3기 체제,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의 러시아, 북·중·러 간 전략 협력, 미국 내 트럼피즘 정서, 보통국가화하는 일본 등은 우리가 당면할 버거운 도전들이다.

후임 정권이 계승하는 글로벌 국가 전략

이 같은 비전과 과제를 실천하는데 5년은 짧다. 대차대조표는 금방 나온다. 못다 한 부분은 계주처럼 후임 정부가 바통을 이어받아 계승 발전시켜야 한다. 국가 전략의 계속성이라는 토대를 확실히 하면서 상황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문화를 정착시켜 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 한반도 문제를 넘어 인·태 지역을 포함한 글로벌 역할의 개념과 목표, 범위와 속도, 추진 방식에 대해 보다 통합적 국가 전략과 로드맵을 수립하고 체계화시켜야 한다. 이번 글로벌 중추국가 비전 설정을 그 계기로 삼을 만하다. 미국의 국가안보전략보고서(NSS)나 인·태전략보고서(IPS)가 좋은 참고 사례다. 국가 전략의 상당한 연속성을 토대로 변화를 모색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4년 동안 일본·유럽연합(EU)과 주요 회원국들, 아세안도 인·태 전략을 발표했는데 이번에 한·미 정상회담에서 윤 행정부가 인·태 전략 프레임워크를 수립하겠다고 밝힌 것은 시의적절하다.

이제는 나무가 아닌 숲을 보는 통합적 틀과 미래 비전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찰스 다윈은 “살아남는 종은 가장 강한 종도, 똑똑한 종도 아닌, 변화에 적응하는 종”이라고 말했다. 대 지각변동 속에서 우리가 얼마나 시대 변화에 잘 적응하고 역할을 해 나가느냐에 우리의 생존과 미래가 달려 있다.

윤병세 전 외교통상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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