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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승 고려대 교수] 법치는 어떻게 지켜지는가

By 한반도평화만들기    - 26-09-23 12:16    13 vi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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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치는 무너질 때도 법의 얼굴을 하고 온다. 정원 변경, 기관의 신설과 폐지, 임명권과 징계 절차 같은 건조한 제도 언어가 반복되는 사이 권력의 균형은 이동하고, 어느 순간 사법부는 독립된 권력에서 관리 가능한 조직으로 바뀐다. 권력은 판결문을 직접 쓰지 않지만, 어떤 제도를 통해 사법부를 다룰지를 관리한다. 사법부 독립은 법관 개인의 양심만으로 지켜지지 않는다. 


헝가리와 폴란드가 이러한 법치의 위기를 보여준다. 2010년 빅토르 오르반이 집권한 뒤 헝가리는 판사 정년을 낮추면서 고위 법관들의 대규모 퇴임을 촉발했다. 헌법재판관 수가 늘어나고 임명 구조도 다수당에 유리하게 바뀌고, 법원행정과 검찰 인사 역시 정치권력 쪽으로 기울었다. 2018년에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을 다룰 별도 행정법원 신설과 법무장관의 사법부 인사 권한을 확대하는 법안이 통과됐다. 야당은 격렬히 반발했지만 절대다수를 가진 집권당의 통과 앞에서 항의는 오래가지 못했다.

폴란드는 헝가리 모델의 변주였다. 2015년 ‘법과 정의당’ 집권 이후 법무장관이 검찰총장을 겸임하고 검사와 법원장에 대한 권한이 강화됐다. 판사 임명에 핵심적인 국가사법위원회(KRS)는 의회 다수의 영향권으로 들어갔고, 대법관 정년도 낮아졌다. 대법원에는 징계재판부가 설치되었고, 판결 내용과 법적 판단도 징계의 대상이 되었다. 2020년 1월 바르샤바에서는 유럽 20개국에서 모인 판사들이 법복을 입고 대법원 계단을 내려와 침묵 행진을 시작했다. 사법 독립의 훼손이 한 나라 법원의 문제가 아니라 유럽 민주주의 전체의 문제가 된다는 경고였다.

유럽연합(EU)도 제동을 걸었다. 유럽사법재판소는 2019년 폴란드 대법원 정년 축소를 EU법 위반이라고 판단했고, 헝가리의 행정법원 설치안도 압박 속에 보류되었다. 헝가리에 대한 EU기금도 동결됐다. 그 사이 헝가리의 프리덤하우스 자유지수는 2005년 93점에서 2025년 65점으로 28점 떨어져 ‘부분적 자유국가’로 격하됐다. 폴란드 역시 93점 수준에서 2026년 82점으로 내려왔다.

더 어려운 일은 복원이다. 폴란드는 2023년 말 투스크 정부 출범 이후 법치 회복에 나섰지만, 사법위원회 개혁안은 2026년 대통령 거부권에 부딪혔다. 과거 정부가 바꾼 인사 구조를 되돌리려면 다시 법을 바꿔야 하고, 이미 임명된 판사의 지위와 판결 효력도 문제가 된다. 그 과정을 거칠게 밀어붙이면 새 정부 역시 법치를 우회한다는 비판을 받게 된다. 법치를 회복하려는 정부도 법치를 우회할 수 없다. 헝가리도 2026년 4월 오르반의 16년 집권을 선거로 끝냈지만 제도가 함께 사라지지는 않았다. 법률과 계약 행정 관행은 여전히 남아 있다. 민주주의는 선거로 복구될 수 있지만, 법치는 선거만으로 복구되지 않는다.

한국을 헝가리나 폴란드와 단순히 등치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사법과 권력기관을 손댈 때 지표와 신뢰, 제도 운영에 오래 흔적을 남긴다는 점은 눈여겨 보아야 한다. 한국에서도 검찰개혁, 대법관 증원과 법왜곡죄, 법원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 등의 변화가 빠르게 이어졌다. 맥락과 명분은 서로 다르지만 질문은 같다. 제도를 고치는 것인가, 권력의 배치를 다시 짜는 것인가.

제도는 선의대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행위자들은 제도가 허용하는 틈을 찾아낸다. 2019년 패스트트랙에서는 공수처 설치와 선거법 개정, 수사권 조정이 패키지 합의로 묶였다. 비례성을 높이려던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위성정당이라는 우회로를 낳았다. 정치적 필요와 속도전 속에서 설계된 제도는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을 남기게 된다.

단편화된 역사 인식과 스스로 정의한 ‘민의’만으로 사법개혁의 명분을 삼을 수는 없다. 선거의 승리가 모든 제도 변경의 백지위임장이 되는 것은 아니다. 사법부와 헌법기관은 선거의 열기와 일정한 거리를 두어야 한다. 바로 그 거리가 삼권분립의 공간이다.

사법부는 흔히 최후의 보루라고 불리지만, 실제로는 정치와 가장 먼저 맞부딪치는 최전선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 구성원들에게는 전문직의 윤리를 넘어 삼권분립을 지킨다는 사명감이 필요하다. 물론 사법부도 냉정하게 반성해야 한다. 전관예우와 폐쇄적 인사 문화, 법조계가 누려온 특권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법조인이 정치권에 들어가 보여준 법 인식이 실망스러웠던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나 사법부는 완벽해서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니다. 삼권분립과 사법부 독립이 민주주의의 기초이기 때문에 지켜져야 한다.

법치는 어느 진영의 제도가 아니다. 유리할 때 인용하는 구호가 아니라 불편할 때 지키는 원칙이다. 민주주의의 진짜 시험은 정권을 바꾸는 능력이 아니라, 정권이 바뀐 뒤에도 제도를 지키는 능력에 있다. 사법을 손보는 권력은 개혁을 말하지만 그 대가는 정권이 아니라 국가가 치른다. 그 비용은 아주 오래, 천천히 돌아온다.

이재승 고려대학교 국제학부 교수·일민국제관계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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