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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연 서울대 교수] 부패를 타고 전염되는 북한의 코로나19

By 한반도평화만들기    - 20-03-11 13:35    4,583 vi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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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시점에서 북한 체제에 가장 위협이 되는 내부 문제는 뭘까. 코로나19가 부패를 통해 북한 내 확산될 가능성이다. 최근 열린 당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논의된 내용이 이를 암시한다. 김정은은 이 회의에서 부패 근절과 바이러스 전염병 대책에 대해 주로 지시했다. 왜 이 두 주제가 동시에 논의됐을까. 김정은은 이 둘을 별개가 아니라 깊이 연관된 문제로 보기 때문일 것이다.

김정은은 부패 하나만으로도 큰 위협을 느끼고 있다. 그는 작년 신년사에서 부패가 ‘사회주의 제도를 침식’한다고 언급했다. 4월의 시정연설에선 부정부패와의 투쟁을 ‘국가 존망과 관련되는 운명적인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번 확대회의에서 노동당 조직지도부장 리만건이 해임됐고 또 2013년 장성택이 처형됐던 주 이유도 바로 부패였다.

부패지수를 만드는 트랜스패런시인터내셔널은 북한의 부패 수준을 세계 180개국 중 4위로 평가하고 있다. 탈북민들도 ‘북한에선 한 발짝 뗄 때마다 뇌물을 줘야 한다’고 말한다. 다수의 북한 공무원은 뇌물 없인 살 수 없다. 이들은 월급과 배급을 합쳐도 생계비의 절반을 벌지 못한다. 반면 시장 활동 종사자의 시간 당 소득은 공무원의 시간 당 월급의 80배에 달한다. 제재 이전엔 연간 수만 달러를 족히 버는 돈주나 외화벌이꾼도 꽤 있었다. 뇌물을 고리로 돈과 권력이 결탁하는 현상이 만연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관료와 경제세력이 결탁한 뇌물공동체는 김정은 중심의 정치공동체와 충돌을 빚을 수 있다. 관료는 정치적으론 독재자에게 충성해야 살아남지만 경제적으로는 뇌물 공여자의 이익을 보호해야 생존할 수 있다. 2009년 화폐개혁 때가 그랬다. 김정일은 사회주의 정신을 갉아 먹는다며 2000년대 중반부터 시장 활동을 단속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시장에서 뇌물을 받아 생계를 꾸리는 관료들은 단속하는 척만 했다. 이에 좌절한 김정일은 관료를 거치지 않고 바로 시장을 타격하기 위해 화폐개혁을 했다가 정권 존망까지 거론될 정도의 큰 위기를 경험했다.

코로나19는 예상치 못한 기습이다. 이 전염병을 차단하기 위해 북한은 1월부터 국경 봉쇄에 나섰다. 관광객을 포함한 인적 왕래를 막고 공식·비공식 무역까지도 중단시키려 했다. 그 결과 외화 수입과 수출입이 크게 줄었을 것이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더 민감한 문제는 시장에 미치는 충격이다. 중국으로부터 소비재와 식량을 수입하지 못하면 물가가 오른다. 시장 거래가 위축되기 때문에 제재로 어려워진 주민 생활은 더욱 피폐해진다. 전염병 확산을 막으려고 지역 간 이동을 최소화하는 정책은 시장 활동을 한결 위축시킨다. 이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주민 불만은 화폐개혁 시기만큼 높아질 수도 있다.

뇌물공동체에겐 이 때가 큰돈을 벌 기회다. 국경 봉쇄를 뚫고 수입한 소비재는 시장에서 비싼 값에 팔릴 수 있다. 계획지표를 달성해야 하는 절박한 기업은 수입 원부자재를 웃돈을 주고라도 사려 할 것이다. 북한 내 이동만 용이하다면 지역 간 가격 차이를 이용해 쉽게 돈을 벌 수 있다. 이 사업을 할 수 있도록 ‘뒷배’를 봐주면 한 몫을 크게 챙길 수 있다며 돈주와 업자들은 관료를 유혹한다. 부패가 전염병을 북한에 퍼뜨리는 경로가 되는 셈이다.

북한의 기저질환인 부패가 급성질병인 코로나19와 결합하면 체제는 사경을 헤맬 수 있다. 김정은은 이 두 질병의 결합을 한사코 막아야 했다. 이를 위해 갑자기 당 정치국 확대회의를 열어 리만건과 박태덕을 부정부패 혐의로 해임했다. 노동당의 권력 실세도 단번에 잘릴 수 있다는 신호를 줌으로써 코로나19의 확산 고리인 부패를 끊고자 한 것이다. 방역에 어떤 ‘특수(예외)’도 허용하지 말라는 김정은의 지시는 부패가 예외를 만드는 관행을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는 경고다.

북한식 부패 방역은 성공할 것인가. 독재자의 서슬에 뇌물공동체는 당분간 숨을 죽일 것이다. 그러나 돈을 벌고픈 인간 본능은 위기가 기회라는 역발상과 결합해 언젠가 방역에 다시 구멍을 내기 시작할 것이다. “월급으론 살 수 없으니 하는 수 없다.” “부패가 경제를 돌리는 윤활유다.” 이렇게 정당성까지 확보한 부패는 바이러스보다 더 교활히 퍼져나간다.

김정은은 부패와 전염병이 얽혀서 통제 불능 상태로 가기 전에 코로나19 사태를 진정시키고 싶을 것이다. 그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에서 이런 속마음이 읽혀진다. 남녘 동포의 건강을 기원한다는 내용이지만 실제는 그가 필요한 것을 넌지시 알리려는 시도다. ‘나도 급하다’는 손짓이다. 친서를 부각시키기 위해 김여정의 비난 담화를 먼저 내놓음으로써 나름 극적 효과도 연출하려 했다.

이번 전염병이 끝은 아니다. 김정은의 관료 통제력은 부패로 크게 약화됐다. 또 다른 사건이 체제를 뒤흔들 수 있다는 의미다. 결국 경제를 발전시켜 관료에게 충분한 월급을 주는 방법밖엔 부패를 줄이는 길이 없다. 그러나 이는 비핵화와 개혁·개방 없인 불가능하다. 자신의 앞날이 여기에 달려 있음을 김정은은 알고 있을까.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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