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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연 서울대 교수] 이선권 가벼운 입의 무거운 의미

By 한반도평화만들기    - 18-11-15 15:27    5,013 vi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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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정치로의 회귀 힘든 김정은
북한 권력층을 통제하기 어려워져
이선권 발언은 권력층 자신감 반영
이들 영향으로 비핵화 더 힘들 수도
북한 권력층의 말과 태도 이면에
흐르는 변화를 아는 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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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냉면과 상스러운 말을 섞어 쓴 이선권의 입은 가벼웠다. 그러나 북한 권력층의 속마음이 드러난 듯 이 말의 의미는 무겁게 다가온다. 당국자 회담이 아니므로 기선을 제압할 필요도 없는 손님, 미래에 중요한 투자자가 될 수도 있는 남한 기업가를 면박 줄 만큼 그의 자신감이 커졌음은 무엇을 의미할까. 원래 가볍고도 공격적인 입이 특기인 그였지만 이번 발언은 그 수준을 한참 넘어섰다. 

주목되는 언급은 또 있다. ‘북한에도 비핵화에 대한 여론이 있습니다.’ 수개월 전 북한 고위층이 한 말로 전해진다. 이는 권력층의 동의 없이 김정은 혼자 비핵화를 결정하기 어렵다는 뜻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이러한 말과 행동은 김정은의 뜻을 따르지 않을 만큼 북한 권력층의 독자성이 증가한 조짐으로 볼 수도 있다. 이렇게 된 이유가 있을까.

‘국제 정치인(international statesman)’으로 등장한 김정은이 더 이상 할 수 없는 것이 생겼기 때문으로 보인다. 바로 공포정치다. 그가 다시 예전의 공포정치로 돌아간다면 미국 등 여러 나라와의 정상회담은 물 건너갈 것이다. 잔인하고 예측 불가능하다는 이전 이미지가 되살아나면 비핵화 협상도 큰 난관에 부딪힐 것이다. 작년 하반기보다 더 어려운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마저 있다. 즉 공포정치로의 회귀는 핵과 미사일 실험 재개와 맞먹을 만큼의 후과를 불러올 수도 있다. 

권력 주변의 미세한 움직임마저 본능적으로 알아차리는 북한 권력층이 이 변화를 모를 리 없다. 실제 올 한 해가 다 가도록 공포정치라 불릴 만한 사건은 없었다. 김정은의 통치력은 여전히 강고하다. 그러나 공포정치의 핵심은 잔인한 처형이다. 그것도 누가 당할지 모른다. 김정은이 이제 더 이상 공포정치를 못 할 것이라는 믿음은 북한 권력층의 마음과 입을 가볍게 만들었다. 그들의 자신감, 나아가 정치적 독자성도 덩달아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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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연칼럼

북한 권력층에겐 탈(脫)공포정치, 탈(脫)제재가 가장 좋은 시나리오다. 그러면 생존 보장과 아울러 권력 및 금력을 동시에 쥐게 된다. 제재 이전 권력층은 광물 등을 수출해서 한 해에 수억 달러의 수입을 나누어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제재로 인해 이 수입이 거의 끊어졌다. 무역 금수 중심의 경제 제재가 가장 타격을 주고 있는 집단은 주민이 아니라 권력층이다. 이선권의 발언에는 권력층을 옥죄는 제재에 대한 거센 불만이 묻어난다. 

김정은의 통치는 한결 어려워졌다. 권력층에는 공포로, 주민들에게는 애민(愛民) 이미지로 통치하려는 권력 유지 수단 중 하나가 작동하지 않게 됐기 때문이다. 공포정치는 무역과 외화벌이 사업을 통해 막대한 수입을 챙겼던 권력층에 대한 김정은의 통제 수단이기도 했다. 정치적 힘에다 경제력까지 갖춘 권력층을 제어하기 위해선 공포가 가장 강력하고 효과적인 수단이었다. 다른 처벌 수단을 다 더해도 공포의 효과를 대체하기 어렵다. 

이는 비핵화에 대해 김정은과 권력층의 이해가 엇갈릴 가능성을 암시한다. 경제 개발을 위해 핵을 포기한다면 김정은은 주민 지지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그 결과 개혁·개방이 되면 권력층은 무역 및 외화벌이에서의 독점 지대를 누리기 어렵다. 북한이 국제금융기구에 가입하고 국제 자본이 들어오면 독점이 경쟁으로 바뀔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아는 권력층은 개혁·개방 대신 제재 해제와 자신들이 통제할 수 있는 자본 정도만 들어오기를 바랄 것이다. 비핵화 협상이 지지부진한 배경에는 비핵화가 개방으로 이어질 것에 대한 이들의 두려움이 깔려 있을 수 있다. 

김정은은 고민 중일 것이다. 공포정치로 돌아가기는 어렵다. 제재로 인해 현상 유지도 힘들다. 설혹 비핵화를 결심한다고 해도 권력층이 따라줄지 자신이 없다. 이런 딜레마로 인해 지난주 미 국무장관 폼페이오와 북한 김영철의 고위급 회담이 불발된 것은 아닐까. 

북한이 공포정치로 돌아가기 어렵게 된 것은 매우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이것이 초래한 북한 내 권력관계의 미묘한 변화는 비핵화를 한층 더 어렵게 만들 듯하다. 비핵화 협상에 북한 권력층이라는 새로운 플레이어가 등장해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북한 이해 수준도 높아져야 한다. 한 개인의 무례한 발언 자체에 지나치게 주목해 들썩거릴 일이 아니다. 북한 권력층의 말과 태도 이면에 흐르는 내부 변화를 제대로 아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이런 역량을 갖출 생각은 하지 않고 사소한 데 집중해 정쟁만 벌인다면 북한 비핵화도, 개혁·개방도 뜬구름 잡기에 불과하다.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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