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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연 서울대 석좌교수] 트럼프 시대, 한국의 지정학과 북한 전략

By 한반도평화만들기    - 24-12-06 10:09    84 vi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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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시대에 북한 비핵화는 어떻게 될까. 러시아, 중동, 중국 문제에 밀려 과연 진전이나 있을까. 보여주기식 거래로 비핵화가 아니라 핵 군축 협상이 돼버리지는 않을까. 우려가 크다. 그러나 기대도 있다. 그의 야성적 본능이 북한을 움직여 비핵화가 가능해지지 않을까. 최소한 북미 관계가 개선되어 남북의 극단적 대립이 완화하지는 않을까. 모든 것이 가능하나 모든 것이 불확실하다. 그러나 이 시대를 읽어내고 북한 문제를 평화롭게 해결하는 과제는 우리의 몫이다. 미국의 정책이 결정된 다음 대책을 찾기보다 한발 앞서 그 결정에 영향을 미쳐야 한다. 지금은 우리에 유리한 판을 만들기 위한 전략적 노력이 긴요한 시점이다.


북한 문제는 지정학과 깊이 얽혔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한반도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전쟁이 계속되어 북한이 더 깊이 개입하면 한국도 관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올 수 있다. 북한뿐 아니라 한국도 큰 위험을 떠안는 결과가 된다. 따라서 전쟁의 조기 종결이 안전한 대안이다. 하지만 푸틴의 승리로 전쟁이 끝난다면 북·러 밀착이 지속될 수 있고 이를 막을 수단이 마땅하지 않다. 인력이 부족한 러시아는 수십만 명의 북한 근로자를 파견받아 전후 재건 사업을 벌일 수 있다. 외화 부족에 신음하던 김정은은 쏟아지는 돈으로 즐거워하며 비핵화 협상은 생각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 남북관계를 더 악화시켜도 부담이 없다. 따라서 자유 진영의 국가들은 전쟁을 빨리 끝내면서도 푸틴이 완승했다고 여기지 못하게 만드는 최적 지점을 찾아야 한다. 여기에 한국이 어떤 역할을 감당해야 할지도 미리 생각하고 준비해야 한다.

위험한 시나리오는 트럼프 차기 대통령과 유럽 나토국의 대립이 극심해지는 경우다. 미국이 전쟁의 조기 종결에만 집중하여 우크라이나 지원을 줄이거나 중단한다면 전쟁은 푸틴의 승리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유럽에서 만난 정책결정자는 “가슴은 뛰지만, 근육이 없다”라며 유럽 나토국의 무력감을 토로했다. 우리는 이에도 대비해야 한다. 조속히 한미 정상회담을 가져 북·러 밀착의 위험을 설명하고, 러시아가 북한군을 돌려보내야 종전 협상이 가능하다는 인식을 트럼프 대통령이 갖게끔 해야 한다. 가장 작지만 가장 유동성이 큰 북한이란 지각판을 러시아라는 거대한 지각판에서 떼어내어야 지정학적 위험을 줄일 수 있다고 설득해야 한다.

트럼프 시대의 대중 압박은 바이든 정부보다 거세질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 1기 때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를 대폭 올리자 북·중 밀착이 심화하였다. 중국이 북한을 미국 압박용 카드로 사용한 것이다. 2기 때 미·중 갈등이 더 심각해지면 북한의 지정학적 가치는 올라간다. 중국이 북한 비핵화를 방해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의미다. 이를 이용해 북한은 한국과 첨예한 대립 국면을 조성함으로써 핵 고도화를 지속하는 대내적 명분을 만들려 할 것이다. 한국은 미국의 확장 억지에 더 깊이 의존할 수밖에 없고, 중국과의 관계는 부차적인 고려 사항이 된다. 한국이 미·중 갈등의 예리한 칼날 위에 서게 되는 셈이다. 이를 돌파할 전략은 무엇인가. 자유와 민주의 가치를 지키는 책임을 다하면서도 북한 문제 해결이라는 국익을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을까.

한국의 전략적 체급을 올리는 것이 급선무다. 미·중이라는 고래 사이에 낀 새우라는 수동적 인식을 벗어나 한국이 움직일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한국의 국력은 새우가 아니라 상어급이다. 중국을 제외한다면 한국은 광범한 첨단 제조업 분야에 걸쳐 대량생산이 가능한 유일한 국가다. 첨단 제조업과 첨단 기술 분야에서 중국과 공급망을 분리하려는 미국의 대중 전략에 한국이 필수적인 이유다. 한국이 지향하는 가치는 미국과 같으며, 중국보다 미국과의 관계가 국익에 훨씬 더 중요하다. 그러나 트럼프 정부가 중국과의 패권 경쟁을 관세 전쟁이라는 단거리 승부가 아니라, 미국의 경쟁력 강화라는 장기적 관점에서 보도록 설득작업을 펴야 한다. 이에 한국이 중요한 기여국이 될 수 있음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그래야 미국은 중국과 북한 문제를 연립방정식으로 풀어낼 전략을 구상할 수 있다. 만약 트럼프 1기 때의 ‘북한 따로, 중국 따로’나, 바이든 정부처럼 ‘중국 대응 집중, 북한 문제 나중’은 또 하나의 실패를 예약하는 길이다.

한일협력은 선택이 아니라 지정학적 파고를 넘기 위한 필수 전략이다. 한일의 안보 자원을 함께 묶는다면 공동의 군사적 위협을 억지하고 유사시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한일의 경제역량을 결합한다면 미·중의 불공정 행위를 견제하고 공급망 안정화를 효율적으로 추진할 수 있다. 역사 문제를 긴 호흡에서 풀어가면서도 위기의 시대를 일본과 함께 헤쳐가야 하는 이유다.

한국은 세계적 국가로 성장했다. 더 높은 곳에 서서, 더 멀리 그리고 더욱 넓게 세상을 봐야 한다. 트럼프의 시대는 지정학을 꿰뚫는 전략이 절실한 때다.

김병연 서울대 석좌교수·경제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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