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연 서울대 교수] 무너지는 나라를 다시 일으키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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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이 밝았다. 그러나 나라의 미래는 캄캄하다. 비상계엄은 강대국으로 비약하려던 대한민국을 개발도상국 수준으로 끌어내린 대참사다. 잘못하면 안보·경제·문화·대외 관계에 미치는 유무형의 파급효과가 1990년대 외환위기에 버금갈 수 있다. 결국 국민 모두에 심각한 피해가 간다. 관건은 정치다. 그러나 외환위기 때는 ‘우리’로 뭉쳐 있었지만, 지금은 ‘너, 나’로 분열되어 있다. 나라를 이끌 대통령도 없다.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을 기각하더라도 그가 직을 계속 수행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민주주의를 버린 사람을 대통령으로 다시 받아들일 국민이 얼마나 될까. 대통령이 아니라 부족장이 되어 갈등이 극심해질 한국호(號)를 이끌고 지정학 태풍이 몰아치는 바다를 안전하게 항해할 수 있을까.
이 위기를 정치제도 개혁의 기회로 삼자는 주장에 공감한다. 하지만 대권이 목전이라고 믿는 거대 야당이 이를 추진할 이유가 있을까. 당의 이익이나 자신의 공천보다 나라를 더 염려하는 의원이 몇이나 될까. 기업 문을 닫게 하고, 한국의 안보를 위태롭게 만들 수 있는 말과 결정을 의원들은 무엇에 홀린 듯 쉽게 내뱉고 내린다. 그러기에 선거법 개정이나 4년 중임제, 분권형 개헌 같은 제안도 이들에게는 마이동풍(馬耳東風)이다. 따라서 정치적 양극화와 이를 부추기는 SNS로 취약해진 대통령제를 개혁하는 과제는 다음으로 미룰 수밖에 없다. 선거관리위원회의 투명성과 소통을 강화하는 노력도 필요하겠지만 같은 이유로 당장엔 쉽지 않을 것이다.
무너지는 나라를 일으킬 힘은 ‘우리’다. 지도자를 선출한 책임도 결국 우리에게 있다. 돌이켜보면 대통령보다 나은 국무총리가 있었다. 그동안 거론됐던 잠재적 대선 주자 중 더 적합한 자가 있었을 법도 하다. 많이 일하고 열심히 사는 우리 국민에게 가장 부족한 역량이 지도자를 잘 선출하는 혜안이다. 반대로 민주주의가 안정적으로 운용되는 선진국의 유권자는 지도자를 잘 뽑아 우리보다 적게 일하고도 더 잘 산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후보에게 표를 주어야 할까.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누가 지도자가 되어 나라를 이끌어야 할까.
‘백마 탄 왕자’를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은 작은 성과를 쌓아가는 정치가 절실한 때다. 영웅과 위인이 나와 한국을 한꺼번에 바꿀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오히려 현인(賢人)과 양인(良人)의 성품을 지닌 지도자를 뽑아 나라를 조금씩 진전시켜 나가야 한다. 대통령과 가족의 일거수일투족이 드러나고, 무슨 일을 하려 해도 절반의 국민이 반대하는 상황에서는 일을 잘할 사람보다 성품에 신뢰가 가는 후보를 택해야 한다. 정치 신인도 배제해야 한다. 정치적 경륜이 없는 자가 대통령이라는 무게를 이기지 못할 때의 위험을 이번 비상계엄 사례가 뚜렷이 보여준다.
원칙을 쉽게 바꾸는 사람은 제외해야 한다. 강한 지도자에 대한 향수도 버려야 한다. 강함과 변개(變改)의 이면은 안정성의 결여, 위험의 증가이다. 지금은 수익 극대화의 시기보다 위험 극소화의 시대다. 지정학의 동요가 경제에 파급되고 전쟁까지 연결된 위험한 세계다. 북한은 대규모 병력을 강대국에 파견할 정도로 무모하다. 여기서 강한 지도자가 문제를 한 방으로 풀려 할 때 위험은 폭증한다. 오히려 진정한 용기와 강함은 신중함에서 나온다. 신중함은 숙려로 이어지고, 숙려는 믿음을 만들어, 국민에는 안정성, 외국에는 신뢰를 준다. 강하기만 한 지도자는 교만으로 패하고, 말을 늘 바꾸는 대통령은 불신으로 망한다.
가족, 특히 배우자에 대한 평판을 살펴봐야 한다. 보수가 집권했을 때 정권의 안정성이 떨어졌던 이유는 오랫동안 동고동락한 세력의 힘보다 개인의 역량으로 대통령이 된 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반면, 그동안 진보는 세력 공동의 힘으로 권력을 잡았다.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세력이 권력을 잡으면 국익보다 자기 세력의 이익을 우선할 수 있지만, 가족 문제로 나라가 파탄 나는 것은 결단코 막으려 한다. 같이 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수 정부의 정치인과 국무위원은 대통령의 은덕을 입은 자인 까닭에 직언하지 않거나, 하더라도 효과가 없다. 그 틈을 대통령의 배우자가 파고든다. 의사 결정에 영향을 미칠 인사를 곳곳에 배치하면 이들의 충성심은 대통령이 아니라 배우자를 향한다. 이것이 이 시점에 비상계엄이 일어난 ‘보이지 않는 이유’ 아닌가. 지금의 야당 주류도 오랫동안 뜻을 같이한 세력보다 열렬 지지층에 기댄 상태가 아닌가. 그렇다면 배우자의 인품과 영향력은 더욱 중요해진다.
우리는 스스로 물어야 한다. 나는 정치인을 저울에 올려놓고 재어보는가. 아니면 절대 선 혹은 절대 악으로 믿고 있나. 정치인에게 충성하지 않고 의심하는 유권자가 민주주의를 지킨다. 우리는 무너지는 나라를 세우는 힘인가, 파괴하는 괴력인가. 함께 수많은 국난을 헤쳐온 우리의 지혜와 용기를 믿는다. 새해로 한 발을 내딛게 하는 힘은 그래도 ‘우리’다.
김병연 서울대 석좌교수·경제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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